도문대작(屠門大嚼) - 고전속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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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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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집 문 앞을 지나면서 크게 입을 다신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모든 일이 뜻대로 될 수가 없다. 뜻대로 되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 일보다 더 많은 사람도 있겠지만,대부분의 사람들의 경우는 뜻대로 되는 일보다 뜻대로 되지 않은 일이 더 많다. 만약 세상의 모든 일이 사람들이 마음 먹은 대로 다 된다면,이 세상은 너무나 재미가 없어서 살기 어려울 것이다. 아무런 호기심(好奇心)도 기대도 긴장도 없기 때문이다.
결과를 모르는 처음 보는 생방송 스포츠중계는 너무나도 재미와 스릴이 있지만,결과를 아는 재방송은 전혀 그렇지 않다. 양식이 약간 모자라야 밥맛이 있고,몇 달 동안 돈을 모아서 산 책이라야 더욱더 애정이 간다. 그래서 사회보장제도가 잘 된 스웨덴 같은 나라의 국민들이 자살률이 매우 높은 것은,생활에서 느끼는 긴장이 없어 세상살이가 맥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단속을 해도 각종 도박(賭博)이 근절되지 않는 것은,거기서 느끼는 짜릿한 매력(魅力)이 있기 때문이다. 복권(福券)을 사는 사람들 가운데는 상금을 타려는 기대도 가지지만,발표까지의 기다리는 재미 때문에 사는 사람도 있다.
근세 중국의 대사상가이자 문학가인 노신(魯迅)이 만든 말 가운데 `정신승리(精神勝利)'라는 말이 있다. 현실에서 자기 욕구를 다 채울 수 없을 때,정신적으로 만족(滿足)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면 어린애가 이웃집 아이와 싸워 이기지 못했지만 “내가 참아서 그렇지 내가 힘대로 했다면,큰 일 났을 거다”라고 하거나,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이,“내가 가수로 데뷔를 안 해서 그렇지 했다 하면 어떤 가수보다 낫지 않겠는가”,누가 고급차를 타고 다니는 것을 보고서,“나도 좋은 차 탈 수도 있지만,환경(環境)을 생각해서 참는 거지” 등등의 생각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현실세계의 부족함을 어느 정도 해결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외국 여행을 하려면 경비가 많이 들지만,여행을 한 사람이 텔레비전에서 그 나라의 풍속이나 문물(文物)을 소개하는 것을 보고 즐기거나 영화를 감상(鑑賞)하는 것도 일종의 정신승리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집이 가난하여 고기를 사 먹을 수 없는 사람이 고기 맛이 좋다는 것을 듣고서 고기 잡는 백정 집 문 앞을 지나면서 입을 크게 다시면,어느 정도 정신적으로 만족하면서 위안(慰安)으로 삼는다는 뜻이다.
`홍길동전'(洪吉童傳)의 작자 교산(蛟山) 허균(許筠)이 지은 책 가운데 `도문대작'(屠門大嚼)이라는 책이 있다. 우리 나라 각지의 과일 물고기 새 짐승 등 음식 특산물과 그 특징과 맛을 기록해 놓은 것으로 식품영양학(食品營養學)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아주 특이한 책이다.
(*. 屠 : 잡을, 도. *. 門 : 문, 문. *. 嚼 : 씹을, 작)
- 경남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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