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무지경(學無止境) - 고전속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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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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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에는 끝이 없다. `열자(列子)`라는 고전(古典)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 노래를 잘 하기로 유명한 진청(秦靑)이 있었다. 그의 명성을 듣고서 설담(薛譚)이란 젊은 사람이 노래를 배우고자 하여 찾아가 스승으로 섬겼다. 설담은 노래를 배우고자 간절히 열망하던 터라 정신을 집중하여 스승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며 열심(熱心)히 배워 나갔다. 진보가 빨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설담은 은근히 자신감이 생겼다. 스승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정신도 집중되지 않았다. 점점 스승의 가르침에 대해서 전혀 존경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마음 속으로,“이제는 내가 스승보다 나아. 더 머물러 봤자 배울 게 없어. 괜히 시간 낭비(浪費)일 뿐이지. 빨리 내 고향으로 돌아가 나도 제자(弟子)를 길러야 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느 날 설담은 용기(勇氣)를 내어 스승에게 어렵게 말을 꺼냈다. “이제 그만 돌아가야겠습니다”. 설담은 말을 마친 뒤,스승의 청천벽력(靑天霹靂) 같은 꾸짖음이나 아니면 차분한 설득(說得)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는데,의외로 스승 진청은 “그래. 알았다”라고 말할 뿐 조금도 만류(挽留)하지 않았다.
짐을 꾸려 설담이 떠나던 날,진청은 설담을 교외(郊外)에까지 전송(餞送)하러 따라갔다가 주막(酒幕)에서 술자리를 마련하였고, 그 자리서 전송하는 뜻으로 노래를 한 곡 불러 주었다. 그 노래 소리에,하늘에 떠 가던 구름이 멈추고,주변 수풀의 나뭇가지가 떨렸다. 그 수준이 자기의 노래와는 너무나 차이가 크다는 것을 깨달은 설담은 당장 바닥에 엎드려,“스승님! 저가 잘못했습니다. 너무 경망(輕妄)하고 교만(驕慢)했습니다. 선생님의 그 높은 경지(境地)를 저가 몰랐습니다. 저의 잘못을 용서하시고 다시 거두어 주시옵소서”라고 사죄하고는 눈물을 흘렸다. 다시 스승을 따라 돌아와 계속 노래를 배우면서,평생 돌아가겠다는 말을 다시는 입 밖에 내지 않았다.
학문(學問)이나 예술(藝術)의 경지는 끝이 없다. 체육(體育)이나 기술(技術) 등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무술(武術)이나 바둑 등은 서로 시합을 하여 우열(愚劣)을 가려낼 수가 있지만,학문이나 예술은 그러하지 못하다. 학자나 예술가 가운데서 자기가 최고라고 교만을 떨고 있는 사람이 있어도,누가 말릴 수 없는 일이다. 그 사람 자신이 공부를 더 하여 자신의 정확한 위상(位相)을 깨닫는 수 밖에 도리가 없다. 진정한 학자나 예술가는 감히 자기가 최고라는 말을 하지 못한다. 학문이나 예술의 경지는 가도가도 끝이 없기 때문이다. 자기의 부족함을 아는 사람은 그래도 대단한 수준이 있는 것이다.
3시간 반 정도의 기록으로 마라톤을 처음 완주한 사람이,그 다음 경기에서 3시간 10분의 기록을 냈을 때,마라톤 세계 최고기록도 별 것 아닌 것으로 여기게 된다. 그러나 그 다음 계속 뛰어 보아도 3시간의 벽을 넘지 못하게 되어서야,세계 최고기록이 얼마나 위대(偉大)한 지를 비로소 알게 된다. 계속 뛰어 보면,세계 기록을 가진 사람은 물론이고 3시간 벽을 넘는 기록을 가진 사람도 신(神)처럼 보이게 된다. 어떤 분야에서 자기보다 조금 나은 사람이,자기와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가를 깨달는 것은,피나게 노력해 본 사람만이 가능하다.
[*. 學 : 배울, 학. *. 無 : 없을 무. *. 止 : 거칠, 지. *. 境 : 경계(경지), 경]
- 경남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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